A New Humanity
2월 첫주에도 계속해서 에베소서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한 새 사람"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정리해 드립니다.
제목: 한 새 사람 (A New Humanity)
본문: 에베소서 2장 11~18절 (Ephesians 2:11~18)
11 Therefore, remember that formerly you who are Gentiles by birth and called “uncircumcised” by those who call themselves “the circumcision” (which is done in the body by human hands)—12 remember that at that time you were separate from Christ, excluded from citizenship in Israel and foreigners to the covenants of the promise, without hope and without God in the world.13 But now in Christ Jesus you who once were far away have been brought near by the blood of Christ.
14 For he himself is our peace, who has made the two groups one and has destroyed the barrier,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15 by setting aside in his flesh the law with its commands and regulations. His purpose was to create in himself one new humanity out of the two, thus making peace, 16 and in one body to reconcile both of them to God through the cross, by which he put to death their hostility. 17 He came and preached peace to you who were far away and peace to those who were near. 18 For through him we both have access to the Father by one Spirit.
요약: 바울 시대 유대인이 이방인을 낮춰 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을 낮춰 볼 것이 아니라, 겸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으며, 십자가에서 그 미움을 없애버리셨습니다.
오늘 이 바울 사도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radical) 문제중 하나를 다루고 계심을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문제가 무엇인가?
2. 해결책은 무엇인가?
3.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결책을 만들어 내시는가?
먼저, 뭐가 문제일까요? 그것은 본문 11~15절에 있습니다. (First of all, What's the problem? It's here verse 11 to 15.) 바울은 할례 받음과 할례받지 않음 (circumcision and uncircumsicion)에 대한 사례 연구 (case study)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할례는 유대인들이 주변의 다른 민족들과 다름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Circumcision was how the Jews were marked out separated from all the other nations around them.) 14절에서는 할례받은 유대인들과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 사이에 적대감 (hostility)과 미움 (hatred)이 있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물어뜯는 싸움 (biting war)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미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14절에 보면 그것은 법률 (law)과, 계명 (commandments)과 규칙 (regulation)이었습니다. 성경이 법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구약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it's talking about the whole old testament.) 유대인은 이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고, 이를 지킴으로써, 하나님 같음, 하나님의 성품이 어떤 것인지를 다른 민족들에게 보여주도록 되어있었습니다. (By following the law, they're supposed to show the nations what Godliness looks like, what God's character looks like.) 이것은 복이어야 했습니다. (This was supposed to be a blessing.) 왜냐하면, 다른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자주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에 빛이 되기로 되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이것이 복이 아니라 적대감과 미움의 근본 (basis)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살지 (walk by God's commandments) 않는다는 이유로 이방인들을 경멸하고 (came to despise), 낮춰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경멸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선물이 복이되어야 했는데, 증오의 이유가 된 것입니다. (The good gift that God gave was supposed be a blessing became an occasion for hate.)
이제, 바울의 사례 연구에서 벗어나서, 이 문제가 전세계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Now, let's pull ourselves out of Paul's case study there, let me show you how this is a universal problem for humans all over the world.) 하나님께서 어떤 재능이나 능력을 주시면, 그것을 받은 사람의 마음에는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높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When God gives good talents, gifts and strengths, there is something in the human heart that takes those gifs and elevates them to an ultimate value.) 좋은 재능을 가지고 나면,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경멸하곤 합니다. (What happens is that when you have these good gifts in your lives, you look down on those who don't have them.) 유대인과 이방인 상황이 아닌 우리의 삶에서도 좋은 재능이 미움의 근본이 되는 같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Even in our lives, not in Jew and Gentile situation, we have the same situations during our daily lives because the good gift becomes the basis for hatred.) 이것으로 인종차별주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의 그룹이 그들의 문화에 좋은 재능을 갖고 있다고 다른 그룹을 낮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키우는 방법은 우리가 가진 좋은 장점을 높이 내세워서 그것을 갖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the way that we develop our identity is to take what's good and strong of ourselves and we lift it up very high and judge everybody that doesn't have what we have.) 우리의 정체성을 개발하는 방법이 남을 하찮게 여기고 그들을 배제하는 데 있다면 이상한 것 아닌가요? (We get our sense of identity by looking down on and excluding other peoples, a very strange way to... identity, isn't it?) 누가복음 18장 11절에 여기에 딱 맞는 예 (perfect example)가 나옵니다. 바리세인이 다른 사람 (토색, 불의, 간음하는자, 세리)과 같지 않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부분입니다.
11 The Pharisee stood by himself and prayed: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luke/18/
저는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한국 문화가 기독교와 맞지 않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제 아내가 서양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고 배운 방식으로 화를 내는 것을 보면서 한국 문화를 멸시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9절~14절에 보면 그러나, 일주일에 두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내는 바리세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9 To some who were confident of their own righteousness and looked down on everyone else, Jesus told this parable: 10 “Two men went up to the temple to pray, one a Pharisee and the other a tax collector. 11 The Pharisee stood by himself and prayed: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12 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
13 “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He would not even look up to heaven, but beat his breast and said,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
14 “I tell you that this man, rather than the other, went home justified before God. For all those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luke/18/
누가 하나님의 정죄하심을 받겠습니까? 끔찍하고 미친 삶을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까? 저는 여기서 바리새인인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과 제 문화를 높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정죄함을 받을 위험에 처한 사람입니다. 제 아내는 회개하면 됩니다. 그녀는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매주 제 결혼생활에 있는 이 적대감과 미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I'm in a weekly struggle against this hostility and hatred, both in my marriage.) 하나님께서 이 구절에 나온 해결책을 저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제 결혼 생활은 끝났을 것입니다. 제 와이프도 똑같은 문제로 몸부림쳤습니다. 그녀가 남아공에서 임신했을 때, 그녀는 하루 중 어느 때건 한국 식당에서 가서 맛있는 것을 사다주고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보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나쁜 (bad) 오빠, 최악의 최악의 최악의 (worst of worst of worst) 오빠라고 소리질렀습니다. 한국 문화는 임신한 여자를 돌봐주는 것을 강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는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페미니스트들은 여자를 놀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Because feminists don't want to make fun of the woman.)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화적 장벽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What's the solution to the culture walls that we're going through?) 15절에 매우 멋진 말이 나오는데, 아무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잘 모르는 말입니다.
15 by setting aside in his flesh the law with its commands and regulations. His purpose was to create in himself one new humanity out of the two, thus making peace,
유대인과 이방인은 항상 나뉘어져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둘을 한 새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목적이라고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승마 클럽이나 테니스 클럽, 아줌마 댄스 클럽에 있을 때, 보다는 같은 문화나 같은 민족에 속해 있을 때 더 유대감을 느낄 것입니다. (One thing to be part of club, maybe ajuma dance club, horse riding club, or tennis club, there's a greater bond than that, if you're part of same race and culture. 역자 주: 미국과 같은 다민족 환경 가정) 여러분이 같은 민족과 있을 때, 여러분은 삶의 모든 부분에서 연결됩니다. (When you're part of the same race, you have the connections in almost every part of your life.)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when you become a Christian), 같은 민족일 때보다 더 근본적인 면에서 우리가 연결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you gain a connection with people that is more fundamental than even being part of the same race as well.)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삶과 죽음을 경험합니다. (you've literally gone through life and death together) 사람이 전쟁에서 죽음과 삶을 경험할 때, 그 유대감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합니다. (When people fight in a war and go through life and death together, the bonds they form is stronger than you can imagine) 우리가 침례를 받을 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과 같이 죽은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죽음입니다. 여러분은 죽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그 물 아래에서 죽었고, 일으켜 세워져 영적인 삶을 얻었고 하나의 몸이 되었다고 1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은 한 새 사람을 직접 만드셨습니다. (In the church, God has made a new humanity for himself.) 그것은 여러분이 자란 문화보다 더 강한 유대인데, 여러분이 새 사람이고, 새 나라요, 새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Which's a stronger bond than the culture that you grew up in, because you're a new humanity, a new nation, and a new people.)
저는 첫째로 그리스도인이고 둘째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I'm Christian first and university educated second.) 저는 첫째로 그리스도인이고 둘째로 한국인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제가 남아공화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가난한 공동체에 가서 교육을 받은 적 없고, 아이가 둘이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기 좋아하는 여자를 만납니다. (When I go back to South Africa, I'm going to the poorest communities and meets a woman who's never been to school, mother of two, who loves a worship to Jesus.) 그러면, 저는 같이 학교를 다닌 사람보다 그녀에게서 더 유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And I have a stronger bond with her than the people that I grew up with when I went to school.) 바울은 이것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시지 않으셨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전쟁을 일으켰던 모든 엄청난 분열을 제거하실 수 있으십니다. (He can get rid of horrible divisions that have caused all of war in human history.) 이 말씀을 통해 인류에게 있었던 모든 분열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All divisions that existed between humanity can be fixed by this passage.)
이 문제의 원인이 마음에 있으므로, 복음은 마음에 작용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태초부터 (from the beginning) 우리는 교만하게 독립적 인간이 되길 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섬겨야 할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으면서도, 종종 교만하게도 자신의 일을 독립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do our own proudly independent things.)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쳤으므로, 우리는 모두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대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높일 수 있는 무언가를 의지합니다. (Instead of turning to God, we turn to something ourselves to boost our identity.)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배제시킵니다. 항상 우리가 만나는 한 그룹이 있고 또한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그룹, 즉 우리가 높이고자 하는 어떤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룹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는 방법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We need to have the way that we build our identity restructured.) 복음은 우리의 정체성을 두가지 방법으로 재구성합니다. 첫째로, 비교하는 것을 파괴하여 우리가 남과 비교하지 않도록 합니다. 성경에서 율법과 계명을 이야기할 때, 그것들은 사람들 사이에 문자 그대로 벽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에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예배드리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의식을 행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기도하였고 경배하는 방법을 알았지만, 이방인들은 벽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유대인의 정결에 대한 율법을 따르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이 벽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더 이상 유대인은 율법으로 정체성을 갖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던 벽을, 예수님의 몸 즉, 교회안에서 없애버리셨습니다. (God has broken the wall that divided the Jews and Gentiles down, in his own body, the body of Jesus Christ.) 하나님은 더이상 율법에서 정체성을 찾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근본적인 (radical)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데 있는 자가 누구고 가까운데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이방인이 멀리있고, 유대인이 가까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방인들은 엉망진창입니다. 그들의 삶은 호색과 무분별과, 난잡한 파티와, 성적인 것에 미쳐있는, K-pop 콘서트 혹은 나이트 클럽과 같은 삶입니다. 로마서 1장 29절에서 32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얼마나 멀리있는 자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
29 They have become filled with every kind of wickedness, evil, greed and depravity. They are full of envy, murder, strife, deceit and malice. They are gossips, 30 slanderers, God-haters, insolent, arrogant and boastful; they invent ways of doing evil; they disobey their parents; 31 they have no understanding, no fidelity, no love, no mercy. 32 Although they know God’s righteous decree that those who do such things deserve death, they not only continue to do these very things but also approve of those who practice them.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romans/1/
유대인은 이에 반해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준을 알았기에 율법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성막이 있고 기도를 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나 17절에보면 둘다, 가까운자와 먼자 모두 평안의 복음을 들을 필요가 있고,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 (reconcile to God)고 되어 있습니다. 멀리있는 자도 구원받아야 한다고 (need to be saved)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자에게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복음을 듣기 전까지, 여러분은 항상 세상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모두 복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세상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거리를 걷다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보면, '아, 저 사람들...', '저 중국인들...', '저 일본인들...' 그것이 여러분들이 자신에 대해 보다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복음은 그것을 멸하고자 하십니다. 복음은 여러분도 똑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을 술취하고 방탕한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구세주이신 하나님을 화나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가까이에 있는 자들도 (those that are close) 구세주이신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있다고 (resenting God as their savior)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저는 정말 좋은 사람 (God, I've been a really really good boy)이었다고 말하며, 자신을 천국에 들여보내줘야 한다고 (you should let me in.)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둘다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있고 교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나누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둘은 모두 자기가 의롭다고 합니다. 둘은 모두 자기 자신의 구세주요,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길을 잃었습니다. 마피아의 청부 살인 업자 (hitman), 매춘부, 교회의 장로 모두 같은 죄인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 구원자가 되려고 하지만, 여러분은 모두 은혜가 필요합니다. 복음이 제일 먼저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으로 다가가서 여러분의 자존심으로부터 여러분을 낮추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죄짓는 기계를 부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것일 수도 있고 서울대학교를 다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주님안에서 완전하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이 확증은 너무 강력해서 여러분의 삶의 토대가 될 것이며, 여러분의 삶을 바꿔놓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치러진 댓가가 여러분이 정체성을 찾는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정체성을 갖기 위한 무언가도 필요 없고, 그것으로 남을 판단하게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내면의 성품보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모두가 하나입니다. (There's a bond now)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인류를 원래대로 재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because God is recreating the human race as it ought to be in the church.)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연합하게 하시나요? 본문 16절에 보면 십자가로 하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로 문자그대로 하나님은 원수된 것을 죽였다 즉, 살육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원수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인간의 죄의 자리에 놓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1 God made him who had no sin to be sin[b]for us,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2-corinthians/5/
일본의 위안부를 강간한 죄의 자리에, 아내를 판단한 저의 죄의 자리에, 모든 죄의 자리에 예수님을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모두 십자가에 달려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파괴하고 나누는데 한몫을 한 사람들입니다. (We've each added to the destruction and division in this world.) 우리로 인해 땅이 피로 물든 것입니다. 이것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찢으셔야 했습니다. (God should cut each of us because of this.)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찢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가 되시고 찢기심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종차별과 증오에 대한 벌이었습니다. 우리가 적대적이고 인종차별을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적대적이 되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야 말로 가장 우수한 분들이십니다. 히브리서 2장 11절에 보면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고 하고 계십니다.
11 Both the one who makes people holy and those who are made holy are of the same family. So Jesus is not ashamed to call them brothers and sisters.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hebrews/2/
그 십자가가 여러분의 삶에 오게 될때,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의 피부색이나, 그사람의 냄새가 어떻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교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