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첫주에도 계속해서 에베소서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한 새 사람"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정리해 드립니다.



제목: 한 새 사람 (A New Humanity)

본문: 에베소서 2장 11~18절 (Ephesians 2:11~18)

11 Therefore, remember that formerly you who are Gentiles by birth and called “uncircumcised” by those who call themselves “the circumcision” (which is done in the body by human hands)—12 remember that at that time you were separate from Christ, excluded from citizenship in Israel and foreigners to the covenants of the promise, without hope and without God in the world.13 But now in Christ Jesus you who once were far away have been brought near by the blood of Christ.

14 For he himself is our peace, who has made the two groups one and has destroyed the barrier,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15 by setting aside in his flesh the law with its commands and regulations. His purpose was to create in himself one new humanity out of the two, thus making peace, 16 and in one body to reconcile both of them to God through the cross, by which he put to death their hostility. 17 He came and preached peace to you who were far away and peace to those who were near. 18 For through him we both have access to the Father by one Spirit.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ephesians&chapter=2

요약: 바울 시대 유대인이 이방인을 낮춰 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을 낮춰 볼 것이 아니라, 겸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으며, 십자가에서 그 미움을 없애버리셨습니다.


오늘 이 바울 사도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radical) 문제중 하나를 다루고 계심을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문제가 무엇인가?

2. 해결책은 무엇인가?

3.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결책을 만들어 내시는가?


먼저, 뭐가 문제일까요? 그것은 본문 11~15절에 있습니다. (First of all, What's the problem? It's here verse 11 to 15.) 바울은 할례 받음과 할례받지 않음 (circumcision and uncircumsicion)에 대한 사례 연구 (case study)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할례는 유대인들이 주변의 다른 민족들과 다름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Circumcision was how the Jews were marked out separated from all the other nations around them.) 14절에서는 할례받은 유대인들과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 사이에 적대감 (hostility)과 미움 (hatred)이 있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물어뜯는 싸움 (biting war)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미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14절에 보면 그것은 법률 (law)과, 계명 (commandments)과 규칙 (regulation)이었습니다. 성경이 법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구약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it's talking about the whole old testament.) 유대인은 이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고, 이를 지킴으로써, 하나님 같음, 하나님의 성품이 어떤 것인지를 다른 민족들에게 보여주도록 되어있었습니다. (By following the law, they're supposed to show the nations what Godliness looks like, what God's character looks like.) 이것은 복이어야 했습니다. (This was supposed to be a blessing.) 왜냐하면, 다른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자주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에 빛이 되기로 되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이것이 복이 아니라 적대감과 미움의 근본 (basis)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살지 (walk by God's commandments) 않는다는 이유로 이방인들을 경멸하고 (came to despise), 낮춰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경멸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선물이 복이되어야 했는데, 증오의 이유가 된 것입니다. (The good gift that God gave was supposed be a blessing became an occasion for hate.)  


이제, 바울의 사례 연구에서 벗어나서, 이 문제가 전세계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Now, let's pull ourselves out of Paul's case study there, let me show you how this is a universal problem for humans all over the world.) 하나님께서 어떤 재능이나 능력을 주시면, 그것을 받은 사람의 마음에는 그것을 최고의 가치 높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When God gives good talents, gifts and strengths, there is something in the human heart that takes those gifs and elevates them to an ultimate value.) 좋은 재능을 가지고 나면,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경멸하곤 합니다. (What happens is that when you have these good gifts in your livesyou look down on those who don't have them.) 유대인과 이방인 상황이 아닌 우리의 삶에서도 좋은 재능이 미움의 근본이 되는 같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Even in our lives, not in Jew and Gentile situation, we have the same situations during our daily lives because the good gift becomes the basis for hatred.) 이것으로 인종차별주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의 그룹이 그들의 문화에 좋은 재능을 갖고 있다고 다른 그룹을 낮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키우 방법은 우리가 가진 좋은 장점을 높이 내세워서 그것을 갖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the way that we develop our identity is to take what's good and strong of ourselves and we lift it up very high and judge everybody that doesn't have what we have.) 우리의 정체성을 개발하는 방법이 남을 하찮게 여기고 그들을 배제하는 데 있다면 이상한 것 아닌가요? (We get our sense of identity by looking down on and excluding other peoples, a very strange way to... identity, isn't it?) 누가복음 18장 11절에 여기에 딱 맞는 예 (perfect example)가 나옵니다. 바리세인이 다른 사람 (토색, 불의, 간음하는자, 세리)과 같지 않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부분입니다.

11 The Pharisee stood by himself and prayed: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luke/18/

저는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한국 문화가 기독교와 맞지 않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제 아내가 서양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고 배운 방식으로 화를 내는 것을 보면서 한국 문화를 멸시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9절~14절에 보면 그러나, 일주일에 두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내는 바리세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To some who were confident of their own righteousness and looked down on everyone else, Jesus told this parable: 10 “Two men went up to the temple to pray, one a Pharisee and the other a tax collector. 11 The Pharisee stood by himself and prayed: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12 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

13 “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He would not even look up to heaven, but beat his breast and said,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

14 “I tell you that this man, rather than the other, went home justified before God. For all those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luke/18/

누가 하나님의 정죄하심을 받겠습니까? 끔찍하고 미친 삶을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까? 저는 여기서 바리새인인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과 제 문화를 높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정죄함을 받을 위험에 처한 사람입니다. 제 아내는 회개하면 됩니다. 그녀는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매주 제 결혼생활에 있는 이 적대감과 미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I'm in a weekly struggle against this hostility and hatred, both in my marriage.) 하나님께서 이 구절에 나온 해결책을 저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제 결혼 생활은 끝났을 것입니다. 제 와이프도 똑같은 문제로 몸부림쳤습니다. 그녀가 남아공에서 임신했을 때, 그녀는 하루 중 어느 때건 한국 식당에서 가서 맛있는 것을 사다주고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보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나쁜 (bad) 오빠, 최악의 최악의 최악의 (worst of worst of worst) 오빠라고 소리질렀습니다. 한국 문화는 임신한 여자를 돌봐주는 것을 강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는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페미니스트들은 여자를 놀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Because feminists don't want to make fun of the woman.)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화적 장벽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What's the solution to the culture walls that we're going through?) 15절에 매우 멋진 말이 나오는데, 아무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잘 모르는 말입니다.

15 by setting aside in his flesh the law with its commands and regulations. His purpose was to create in himself one new humanity out of the two, thus making peace,

유대인과 이방인은 항상 나뉘어져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둘을 한 새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목적이라고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승마 클럽이나 테니스 클럽, 아줌마 댄스 클럽에 있을 때, 보다는 같은 문화나 같은 민족에 속해 있을 때 더 유대감을 느낄 것입니다. (One thing to be part of club, maybe ajuma dance club, horse riding club, or tennis club, there's a greater bond than that, if you're part of same race and culture. 역자 주: 미국과 같은 다민족 환경 가정) 여러분이 같은 민족과 있을 때, 여러분은 삶의 모든 부분에서 연결됩니다. (When you're part of the same race, you have the connections in almost every part of your life.)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when you become a Christian), 같은 민족일 때보다 더 근본적인 면에서 우리가 연결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you gain a connection with people that is more fundamental than even being part of the same race as well.)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삶과 죽음을 경험합니다. (you've literally gone through life and death together) 사람이 전쟁에서 죽음과 삶을 경험할 때, 그 유대감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합니다. (When people fight in a war and go through life and death together, the bonds they form is stronger than you can imagine) 우리가 침례를 받을 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과 같이 죽은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죽음입니다. 여러분은 죽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그 물 아래에서 죽었고, 일으켜 세워져 영적인 삶을 얻었고 하나의 몸이 되었다고 1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은 한 새 사람을 직접 만드셨습니다. (In the church, God has made a new humanity for himself.) 그것은 여러분이 자란 문화보다 더 강한 유대인데, 여러분이 새 사람이고, 새 나라요, 새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Which's a stronger bond than the culture that you grew up in, because you're a new humanity, a new nation, and a new people.)


저는 첫째로 그리스도인이고 둘째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I'm Christian first and university educated second.) 저는 첫째로 그리스도인이고 둘째로 한국인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제가 남아공화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가난한 공동체에 가서 교육을 받은 적 없고, 아이가 둘이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기 좋아하는 여자를 만납니다. (When I go back to South Africa, I'm going to the poorest communities and meets a woman who's never been to school, mother of two, who loves a worship to Jesus.) 그러면, 저는 같이 학교를 다닌 사람보다 그녀에게서 더 유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And I have a stronger bond with her than the people that I grew up with when I went to school.) 바울은 이것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시지 않으셨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전쟁을 일으켰던 모든 엄청난 분열을 제거하실 수 있으십니다. (He can get rid of horrible divisions that have caused all of war in human history.) 이 말씀을 통해 인류에게 있었던 모든 분열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All divisions that existed between humanity can be fixed by this passage.) 


이 문제의 원인이 마음에 있으므로, 복음은 마음에 작용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태초부터 (from the beginning) 우리는 교만하게 독립적 인간이 되길 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섬겨야 할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으면서도, 종종 교만하게도 자신의 일을 독립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do our own proudly independent things.)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쳤으므로, 우리는 모두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대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높일 수 있는 무언가를 의지합니다. (Instead of turning to God, we turn to something ourselves to boost our identity.)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배제시킵니다. 항상 우리가 만나는 한 그룹이 있고 또한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그룹, 즉 우리가 높이고자 하는 어떤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룹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는 방법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We need to have the way that we build our identity restructured.) 복음은 우리의 정체성을 두가지 방법으로 재구성합니다. 첫째로, 비교하는 것을 파괴하여 우리가 남과 비교하지 않도록 합니다. 성경에서 율법과 계명을 이야기할 때, 그것들은 사람들 사이에 문자 그대로 벽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에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예배드리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의식을 행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기도하였고 경배하는 방법을 알았지만, 이방인들은 벽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유대인의 정결에 대한 율법을 따르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이 벽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더 이상 유대인은 율법으로 정체성을 갖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던 벽을, 예수님의 몸 즉, 교회안에서 없애버리셨습니다. (God has broken the wall that divided the Jews and Gentiles down, in his own body, the body of Jesus Christ.) 하나님은 더이상 율법에서 정체성을 찾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근본적인 (radical)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데 있는 자가 누구고 가까운데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이방인이 멀리있고, 유대인이 가까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방인들은 엉망진창입니다. 그들의 삶은 호색과 무분별과, 난잡한 파티와, 성적인 것에 미쳐있는, K-pop 콘서트 혹은 나이트 클럽과 같은 삶입니다. 로마서 1장 29절에서 32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얼마나 멀리있는 자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

29 They have become filled with every kind of wickedness, evil, greed and depravity. They are full of envy, murder, strife, deceit and malice. They are gossips, 30 slanderers, God-haters, insolent, arrogant and boastful; they invent ways of doing evil; they disobey their parents; 31 they have no understanding, no fidelity, no love, no mercy. 32 Although they know God’s righteous decree that those who do such things deserve death, they not only continue to do these very things but also approve of those who practice them.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romans/1/ 

유대인은 이에 반해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준을 알았기에 율법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성막이 있고 기도를 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나 17절에보면 둘다, 가까운자와 먼자 모두 평안의 복음을 들을 필요가 있고,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 (reconcile to God)고 되어 있습니다. 멀리있는 자도 구원받아야 한다고 (need to be saved)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자에게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복음을 듣기 전까지, 여러분은 항상 세상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모두 복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세상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거리를 걷다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보면, '아, 저 사람들...', '저 중국인들...', '저 일본인들...' 그것이 여러분들이 자신에 대해 보다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복음은 그것을 멸하고자 하십니다. 복음은 여러분도 똑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을 술취하고 방탕한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구세주이신 하나님을 화나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가까이에 있는 자들도 (those that are close) 구세주이신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있다고 (resenting God as their savior)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저는 정말 좋은 사람 (God, I've been a really really good boy)이었다고 말하며, 자신을 천국에 들여보내줘야 한다고 (you should let me in.)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둘다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있고 교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나누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둘은 모두 자기가 의롭다고 합니다. 둘은 모두 자기 자신의 구세주요,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길을 잃었습니다. 마피아의 청부 살인 업자 (hitman), 매춘부, 교회의 장로 모두 같은 죄인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 구원자가 되려고 하지만, 여러분은 모두 은혜가 필요합니다. 복음이 제일 먼저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으로 다가가서 여러분의 자존심으로부터 여러분을 낮추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죄짓는 기계를 부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것일 수도 있고 서울대학교를 다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주님안에서 완전하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이 확증은 너무 강력해서 여러분의 삶의 토대가 될 것이며, 여러분의 삶을 바꿔놓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치러진 댓가가 여러분이 정체성을 찾는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정체성을 갖기 위한 무언가도 필요 없고, 그것으로 남을 판단하게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내면의 성품보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모두가 하나입니다. (There's a bond now)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인류를 원래대로 재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because God is recreating the human race as it ought to be in the church.)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연합하게 하시나요? 본문 16절에 보면 십자가로 하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로 문자그대로 하나님은 원수된 것을 죽였다 즉, 살육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원수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인간의 죄의 자리에 놓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1 God made him who had no sin to be sin[b]for us,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2-corinthians/5/

일본의 위안부를 강간한 죄의 자리에, 아내를 판단한 저의 죄의 자리에, 모든 죄의 자리에 예수님을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모두 십자가에 달려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파괴하고 나누는데 한몫을 한 사람들입니다.  (We've each added to the destruction and division in this world.) 우리로 인해 땅이 피로 물든 것입니다. 이것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찢으셔야 했습니다. (God should cut each of us because of this.)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찢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가 되시고 찢기심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종차별과 증오에 대한 벌이었습니다. 우리가 적대적이고 인종차별을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적대적이 되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야 말로 가장 우수한 분들이십니다. 히브리서 2장 11절에 보면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고 하고 계십니다.

11 Both the one who makes people holy and those who are made holy are of the same family. So Jesus is not ashamed to call them brothers and sisters.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hebrews/2/

그 십자가가 여러분의 삶에 오게 될때,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의 피부색이나, 그사람의 냄새가 어떻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교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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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Craig Richardson 목사님께서는 에베소서 말씀을 여러 주동안 전하고 계십니다. 조금 늦었지만 지난 2016년 1월 31일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아무쪼록, 읽으시는 여러분께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길 기도합니다.



제목: 교회를 향한 영광의 계시 (A revelation of glory for the church)

본문: 에베소서 1:15~23 (Ephesians 1:15~23)

15 For this reason, ever since I heard about your faith in the Lord Jesus and your love for all God’s people, 16 I have not stopped giving thanks for you, remembering you in my prayers.17 I keep asking that 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glorious Father, may give you the Spirit[f] of wisdom and revelation, so that you may know him better. 18 I pray that the eyes of your heart may be enlightened in order that you may know the hope to which he has called you, the riches of his glorious inheritance in his holy people, 19 and his incomparably great power for us who believe. That power is the same as the mighty strength 20 he exerted when he raised Christ from the dead and seated him at his right hand in the heavenly realms, 21 far above all rule and authority, power and dominion, and every name that is invoked, not only in the present age but also in the one to come. 22 And God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appointed him to be head over everything for the church, 23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everything in every way.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ephesians&chapter=1

요약: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주신 보증은 1) 부르심의 소망, 2)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3) 지극히 큰 능력임을 알고, 지혜와 계시의 성령님과 함께하면 그 보증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바울은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으며, 교회가 부르심의 소망과,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설교 직전에 하는 기도를 들어보면 교회 지도자, 사람들의 건강,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왜 그런 것들에 집중하지 않았을까요? 바울은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을 가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삶 속의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를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8절에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여기서 마음은 생각 (mind)과 감정 (emotion)을 이야기하며 이 두가지가 완전히 바뀌길 (transformed)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내적 성격이 밝혀지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의 눈을 밝히지 않는다면,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넣어두신 보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뜻하신 모습이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you will never become what God made you to become.)


오늘은 다음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보증 (deposit)이 무엇인가?

2) 그것을 어떻게 누릴 (꺼낼) 수 있는가? (how we draw it out?)


본문 18~19절에 바울이 우리가 알고 있기를 바라는 세가지 보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부르심의 소망

2)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3) 능력의 지극히 크심

바울은 우리가 위 세가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길 원하는 것입니다.


5살짜리 소녀가 버림받아 고아원에 있는데, 엄마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 여자가 고아원에 와서 같이 이야기하고 웃다가 그 소녀가 그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도 마음을 열고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한 후, 그 소녀에게 딸로 삼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때 딸이, 당신의 은행 계좌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내가 20살이 되었을 때, 어떤 대학에 갈지 이야기 해볼까요? 30살이 되었을 때, 난 어디에 있고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소녀는 그렇지 않고 바로 그녀의 품안으로 달려가 '엄마'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린이는 당장 필요한 것 (immediate need)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사랑과 용서만 찾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당장 필요한 것을 채워줄 능력을 찾고 있었습니다. (You're looking for the strength to face your immediate needs.)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한다 (He wants us to know our true needs)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데서 출발합니다.


만약 위의 여자가 힐러리 클린턴이고, 그녀는 5살짜리 소녀에게 '앞으로 많은 기회와 책임을 부여 받고, 살면서 여러 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야'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소녀가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하길 바란다고 하고 그리고 무엇을 갖게 될지와 스스로에 대해 알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합시다. 사실 우리는 다섯살짜리 자녀에게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다섯살짜리는 힐러리 클린턴이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관계는 '엄마'-'가슴'-'젖'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이와 같이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바울은 그것을 알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1) 부르심의 소망

먼저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것을 알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는 것 (If God doesn't choose you, nobody's gonna meet God at all)입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이 부르심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26 Brothers and sisters, think of what you were when you were called. Not many of you were wise by human standards; not many were influential; not many were of noble birth. 27 But God chose the foolish things of the world to shame the wise; God chose the weak things of the world to shame the strong. 28 God chose the lowly things of this world and the despised things—and the things that are not—to nullify the things that are, 29 so that no one may boast before him. 30 It is because of him that you are in Christ Jesus, who has become for us wisdom from God—that is, our righteousness, holiness and redemption. 31 Therefore, as it is written: “Let the one who boasts boast in the Lord.”[d]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1-corinthians/1/

우리가 불린 것은 우리가 현명하거나, 선하거나, 외모가 뛰어나서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고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은 강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Salvation has nothing to do with being strong.) 구원을 약한자를 구함으로 이뤄집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소망 (hope)과 자신감 (confidence), 확신 (assurance)과 담대함 (boldness)이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통해 온다는 것을 알길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이해할때, 여러분은 위대한 삶을 살게 될 것 입니다. (you'll live a very big life) 이 사실은 굉장히 큰 사실이며 저 또한 이 택함을 받았음과 하나님께 나아갈 만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몇년이 걸렸습니다. (This is a huge thing to get your head around, because it has taken many years to understand the implication of the fact that I was called and I've deserved to God... walk to God by myself) 제가 비기독교인에게 말을 걸 때, 저는 그 사람이 저보다 더 나은 사람일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저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된 아닙니다. 저도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저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해 큰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좋은 그리스도인 타입이 아니라거나, 저 사람은 부름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세상에 나가서 다른 사람에 대한 큰 소망이 없다면,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젖을 떼고 음식을 먹듯이 바울은 우리가 의지해야 할 두번째 보물을 (the second thing that Paul says we should be drawing on as a treasure)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본문 18절의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도안에서 "그" (주님의) 기업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바로 교회입니다. 이 점이 중요한데, 지난주 설교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보물과 그의 영광스런 기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하고 하나님께서 "와우"하실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2~23절을 보면, 교회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충만 (fullness)이라는 단어는 놀라운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성취 (fulfillment) 혹은 영광 (glory)입니다. 즉, 교회가 하나님의 성취 혹은 영광인 것입니다. (A Church is the fulfillment of God or the glory of God).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우리와 연결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이 된 것입니다. (His God has linked himself to us in such a way that we are his fullness.) 우리가 그의 보물인 이유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여주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을 보여줄 수 있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보증을 누릴 수 있을까요? (how do we draw this deposit out?) 어떻게 이것들이 우리의 삶속에서 일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how do we make this work in our lives?) 어떻게 우리의 삶속에서 이것들을 통해 무엇인가를 누릴 수 있을까요? (how do we gain something in from this in our lives?)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과 그의 명예를 우리와 묶으셨다고 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를 거역하고, 뻔뻔스러운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짓밟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모든 명예가 여러분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이것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여러분께서는 죄를 짓지 않을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To the degree that you understand this, you will receive power from God not to sin.)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이것을 이해하는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이 다음으로 우리가 누리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도록 한 능력

2.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신 능력

3. 세상의 모든 것을 교회를 위해 다스리시는 능력

본문 22절에 보면 하나님의 능력은 너무 완전해서 모든 것을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다스리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예중 저는 이 예를 가장 좋아합니다. 만약 어느날 제 아내가 제가 은행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저에게 다가와서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았다면,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a number of things would not have happened.) 제 전화번호를 받아가지 않았다면 다음날 데이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첫번째 데이트는 그녀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패했고, 다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there was very little chance that I would have ever seen her again.) 그런데, 제 친구 중 한명이 결혼 피로연을 하게된 레스토랑의 매니저가 제 아내였습니다. (But I had a friend who was having a wedding reception and Joowon was the manager... happened to be... when my friend was having her wedding reception.) 제가 몸을 돌렸는데, 주원씨가 있었습니다. 그런일이 없었다면,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고, 같이 비행기를 타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내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we would have never landed back at South Africa together.) 아이도 없었을 것이고, 다시 한국에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남아공에서 제 석사 논문을 쓰고 (write a master's)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설교를 듣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모든 것과 함께 일하고 계신다는 것이 보이십니까? 심지어 '어우! 외국인이 멋있어요'라고 하는 여자까지도 주관하십니다. 심지어 아무리 어리석게 보이는 일까지도 (even the stupid thing) 지금 이순간에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 전체가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통치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까? 여러분의 삶속에서 그렇게 확신하며, 평안하게 살고 있습니까? (do you live with that kind of confidence, that kind of peace in your lives?) 


제 결혼식에서 내 영혼 평안해 (it is well with my soul)라는 찬송가가 불려졌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죽으시기 전에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이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그 노래는 햇빛이 비치는 날 부르는 찬송이기도 하지만, 암으로 몸이 무너져갈때 부르는 찬송이기도 합니다. (Now it's one thing to sing that song on a sunny but it's another thing to that song when your body's just collapsing of cancer.)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녀들 앞에 앉으셔서, 그것이 그들 앞에서 하는 마지막 설교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know this is the last time that he's gonna preach in front of them) 아버지께서 설교를 마치시고, 내 영혼 평안해라는 찬양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지어 암까지도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다스리신다는 것을 이해할때, 이 찬양을 부를 수 있습니다. (You can only sing that, if you understand from your heart that God is truly controlling everything, even your cancer for your good.)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여러분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스리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놀라운 능력과 기업을 누릴 (draw on)수 있습니까? 본문 17절과 18절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여러분 절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그 사랑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날 용서하시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두렵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절망의 언어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여전히 죄책감이 들고, 두렵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여러분이 여전히 그렇게 느끼는 것은, 여러분이 (머리로) 알고는 있으나 여러분이 정말 (마음으로) 알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오셔서 역사하시고 모든 것이 머리로부터 가슴으로 움직이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What Paul is praying is that Holy Sprit will come and affect you to move everything from here down to here.) 또한 바울은 성령께서 여러분과 모든 것과의 관계에 역사하신다는 것을 이해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He's praying that you come to know and understand a way that he will affect you and relationships with everything.) 이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기독교도 아니고 복음도 아닙니다. 바울은 지혜와, 지식과, 계시의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을 밝히사 여러분이 이미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체험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삶 가운데 우리 자신이 죄 없음에 대한 확신, 평안한 보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What's the thing we should do if we don't find ourselves having this guilt-free confidence, peaceful kind of assurance in our lives?) 

첫째로, 매일 자신을 위해 본문 17절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The first thing is to pray verse 17 for yourself everyday.)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내가 이 것을 알지 못하므로 평안가운데 살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say to yourself I don't live with peace because the truth is I don't know this thing.) 또한 자기 통제를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십시오. (The truth is that I don't know this thing because I don't have self-control in my life.) 또한 내안에 충만함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십시오. (Because I don't understand this fullness in me.) 또한 내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몰라서 확신과 소망 없이 살고 있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다음으로, 성경을 다르게 읽어야 합니다. 내가 이 읽고 있는 구절을 정말로 안다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어떻게 달라질지 (how would I be different from head to toe?), 직원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how would my relationship with staffs be different?), 직장의 상사와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물어보십시오. 앉아서 성경을 읽으면서 구절에서 보이는 20~30개를 적고 (as you sit with bible you write down 20 or 30 things that you see coming out of the passage) 하나님께 이것들을 안다면 내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약속하건대, 여러분께서 이 연습을 계속하시면, 다섯번중 한번은 (one time out of five) 여러분들께서 알게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기도를 할때 (as you pray this pray), 여러분께서는 그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여러분의 눈을 여실 것입니다. (God will respond and you will actually experience, responding opening your eyes.)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7장에서 이 기도를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를 할 수 있으셨지만,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는 이 기도를 거꾸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가지를 놓고 기도하셨습니다. 1) 주여, 저들을 당신에게로 이끄소서 (Lord, I want you to call them to yourself), 2) 아버지 저들을 당신의 기업과 소중한 보물이 되게 하소서 (Father I want you to make them your inheritance and valuable treasure), 3) 그들을 당신의 능력으로 덮으시고 세워주소서. (I want you to just envelop them support them with your power.) 그러나 예수님이 기도하신 방식은 저들을 당신에게 이끄시고 나를 버리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을 당신의 보물로 만드시고 나를 쓸모없는 것으로 쓰레기통에 버리시고 지옥을 저에게 보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throw me out on the trash as worthless, send me the hell) 당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깨뜨리시고 능력을 빼앗고 약하게 하라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실 수 있으셨던 것은 그 기도를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반대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The only way that Jesus could pray that prayer for you was because he prayed in reverse for himself.)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본다면, 당신은 녹아지고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If you really see Jesus praying for you, it will melt you, it will change.) 여러분은 피투성이 남자가 등에 여러분의 죄를 짊어지고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You will begin to see that bloody man walking down that street carrying your sins on his back.) 그리고 그의 피가 떨어져 모래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을 볼 때,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보게 될 것입니다. (and then you see the blood dripping into the sand, you will see the spirit of wisdom and of revelation.) 고린도전서 1장 23~24절에서 바울은 이 지혜가 무엇을 보여주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but we preach Christ jcrucified, a stumbling block to Jews and folly to Gentiles,24 but to those who are called, both Jews and Greeks, Christ kthe power of God and lthe wisdom of God.

출처: http://www.esvbible.org/1%20Corinthians+1/

본문 22절에 보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시고, 우리 (교회)가 몸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지 아십니까? 그것은 약함중의 능력입니다. (Have you learned what the power of God looks like? It's power in weakness.)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예수님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을 여러분이 보게 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숨겨진 지혜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When you see him becoming nothing for you so that you might become the glory of God, that's when you will understand God's hidden wisdom.) 교회가 이 사실을 알때, 머리 (예수님)와 몸 (교회)이 같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When the church knows this, there will be no difference between the head and the body.) 예수님이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채우시는 분인데, 여러분이 이제 그의 충만함이됩니다. (you are now fullness of him who fills everything everywhere.)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가운데 어떻게 역사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쏟아 부으셨는데,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As he's pouring himself out for you, are you taking advantage of others?)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가실 때, 남편들은 아내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Husbands are you failing to listen to and understand and love your wife, when he carried that cross for you?) 주님은 지옥의 고통과 괴로움을 여러분을 위해 당하시고 지옥에 홀로 남겨지면서까지, 여러분이 그의 충만과 그의 지혜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He suffered the torment and the agony of hell for you and and the isolation of hell for you so that you could become his fullness and his wisdom.) 아내들은 십자가의 계시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Wives you're submitting yourselves to a message in everything out of revelation from cross, because he submitted himself to death for you.) 여러분은 남편을 조정하면서, 남편을 쥐어짜면서 자신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Are you insulting yourselves controlling your husband and squeezing him down?) 여러분이 예수님을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삶가운데 영광이 됩니다. 그 때, 여러분은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받아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채우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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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순복음강남교회 EM 설교를 정리해 봅니다. 사실 이 정리작업이 저에게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데,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써 부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경 대학원이 방학이므로 다시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라는 예정설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말미암았으므로 자랑치 못하게 하셨다는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을 기억하며 설교를 정리해 봅니다.


FullGospelGangnamChurch EMPredestined for glory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시는 Craig Richardson목사님과 통역하시는 Daniel Lee 전도사님

제목: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정됨 (Predestined for glory)

말씀: 에베소서 1장 11~14절 (Ephesians 1:11~14)

11 In him we were also chosen,[e] having been predestined according to the plan of him who works out everything in conformity with the purpose of his will, 12 in order that we, who were the first to put our hope in Christ, might be for the praise of his glory. 13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message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When you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14 who is a deposit guaranteeing our inheritance until the redemption of those who are God’s possession—to the praise of his glory.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ephesians&chapter=11


주요 내용: 우리는 창세전부터 구원을 예정하신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파하고,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더욱 거룩하게 살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선택하심 (election), 미리 예정하심 (predestination), 즉 우리를 고르셨다는 사실 (He chose us)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된 자들에게만 성령을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미리 예정하심을 믿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믿겠다고 했는데, 선택이라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 미리 선택하심이 가장 큰 하나님의 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만약, 이 사실을 듣고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괴롭다면, 이 예정하심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정하심을 잘 모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14절은 바울이 옥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로 쓴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의 찬양 내용은 3절과 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Praise for Spiritual Blessings in Christ

Praise be to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has blessed us in the heavenly realms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Christ. For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to be holy and blameless in his sight.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ephesians&chapter=11


즉, 바울은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셨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정하심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도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만, 

 For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to be holy and blameless in his sight. In love he[b] predestined us for adoption to sonship[c] through Jesus Christ, in accordance with his pleasure and will—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ephesians&chapter=11

 

요한복음 6장 3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즉 아버지께서 주시지 않으시면 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다 주님께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미리 예정하심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37 All those the Father gives me will come to me, and whoever comes to me I will never drive away.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john&chapter=6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지난 주에 보았습니다. 여기에는 구원도 포함됩니다. 본문 11절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1 In him we were also chosen,[e] having been predestined according to the plan of him who works out everything in conformity with the purpose of his will,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굉장히 순진하고 어리석은 (naive) 생각입니다. 우리는 삶의 중요한 일들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태어날지 통제하지 못합니다. 북한에서 태어날지 한국에서 태어날지 정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날지 정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교육을 받을 지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거의 통제하지 못합니다. (So, we actually have little control of our lives.) 성경은 실상 우리가 전혀 우리의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everything), 모든 곳에서 (everywhere), 항상 (all the time) 통제하십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도 마찬가집니다. (your eternal destiny as well).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예정론에 가지는 태도에 대한 문제점 세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미리 예정되었다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

2) 구원을 예정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낫다는 의미이므로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 (undermine humility)

3) 우리가 선택되었으므로 (구원되었으므로)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이 세가지 우려스러운 문제들 (concerns)은 사실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선택하심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의 모든 걱정거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Paul explanation about election gently answers to all of our anxiety that we have.)


1) 미리 예정되었다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

미리 선택하심이 오히려 복음 전도의 이유가 됩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13절에 보면,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었을 때, 주님안에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복음 전도를 통해서 선택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시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인치심을 받게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13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message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When you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ephesians&chapter=11


이 말씀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만약 복음이 증거될 때, 성령님을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복음을 전혀 믿지 못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보면 우리는 모두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단절된 (cut off) 사람들이었고 영적으로 그에게 응답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18절에 보면 바울이 겁에 질려 있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를 적대시할 때, 하나님께서는 겁내지 말고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교회는, 자신있게 기도하고 자신있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전 세계에 구원하실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One night the Lord spoke to Paul in a vision: “Do not be afraid; keep on speaking, do not be silent. 10 For I am with you, and no one is going to attack and harm you, because I have many people in this city.”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acts&chapter=18

복음 증거는 마치 금을 캐내는 것과 같은 즐거운 과정 (joyful process) 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금을 캐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문신 (tatoo), 흉터 (scar), 매춘 (prostitute), 무엇이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선택하십니다. 


2) 구원을 예정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낫다는 의미이므로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

미리 선택하심이 오히려 겸손의 이유가 됩니다. 4절을 보면 우리는 창세전에 택함을 받았습니다. 즉, 우리가 더 똑똑하고, 부유하고, 종교적이어서가 아니라, 태어나기도 전에 주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이 불공평하다거나,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우리는 선택할 때마다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단 한번의 죄는 우리를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시켜 버릴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을 보면 그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심판입니다. 3절에서 우리는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All of us also lived among them at one time, gratifying the cravings of our flesh[a] and following its desires and thoughts. Like the rest, we were by nature deserving of wrath.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ephesians/2/

즉, 우리의 구원 (salvation)은 선물 (gift)이며, 우리의 어떤 선택과도 상관이 없음 (has nothing to do with choices you made)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4~5절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적혀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But because of his great love for us, God, who is rich in mercy, made us alive with Christ even when we were dead in transgressions—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ephesians/2/


3) 우리가 선택되었으므로 (구원되었으므로)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미리 선택하셨다면 우리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4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거룩하기 때문에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시려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정론을 믿는 많은 교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경우를 보는데, 이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대한 계획은 명확합니다. 복음을 증거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 존재의 이유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Churches who don't do evangelism are ignoring the whole reason for the churches' existence.)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에 대해 좀 더 명확히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모든 것에 대한 마스터 플랜에 의해 이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1 In him we were also chosen,[e] having been predestined according to the plan of him who works out everything in conformity with the purpose of his will,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ephesians&chapter=11

성경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을 무엇일까요? 하박국 2장 14절에 보면, 야훼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언젠가 이 세상 전체가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마스터 플랜입니다. 

14 For the earth will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habakkuk&chapter=2

야훼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출애굽기 33장 18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34장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번쩍이는 불빛 (flashing light)이나 아름다운 창조물을 보여준 아니라 동정과 자비, 사랑과 신실함의 목소리를 들려주셨습니다. 

18 Then Moses said, “Now show me your glory.”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exodus&chapter=33

 And he passed in front of Moses, proclaiming, “The Lord, the Lord, the compassionate and gracious God, slow to anger, abounding in love and faithfulness,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exodus/34/

화내기 더디함과 사랑과 신실함에 묶임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slow to anger and bounding love and faithfulness, that is the glory of the Lord.)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의 존재의 바로 본질인 것입니다. 모세에게 그의 영광은 동정과, 은혜, 인내, 사랑과 신실함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산과 별은 아름답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비추지 못합니다. (They can't reflect God's character into the world.)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의 자비와 동정과 인내가 육신에 입혀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후에야 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이 되어야 했고,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살과 피로 보고 체험하게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들어갔던 그 영광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이 세상을 인류로 채우고, 인류를 하나님의 영광의 성령으로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만, 하나님의 동정과 정의, 자비가 이 세상을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채우게 될 것입니다. 본문 13, 14절을 보겠습니다.

13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message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When you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14 who is a deposit guaranteeing our inheritance until the redemption of those who are God’s possession—to the praise of his glory.

존 스토트 (성공회 사제, 1921~2011)는 영어 성경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14절의 우리 기업 (our inheritance)을 하나님 기업 (God's inheritance)로 바꿔야 한다고 합니다. 즉, 성령께서 하나님의 보증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기업이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부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전 세계에 인류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을 보증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이 세상은 하나님 영광으로 가득해야 하나요?  하나님만이 오직 만물들로부터 찬양받으실 분으로 남아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서 나타나나요? 예수님께서 죽으신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숨겨진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과 함께 하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만, 우리가 그 영광을 흉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4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구원하기로 하시고 우리를 그의 소유로 하셨습니까? 본문 14절에 보면 '그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바울의 삶속에서와 같은 찬양이 이 교회에 없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뜻 (will go God)이 여러분 자신과 겨루고 (competing) 있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서는 자신의 영광을 찬양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주님을 볼때, 여러분은 여러분 죄의 수치심으로부터 정결하게 되고, 자기 중심성의 지옥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구원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하고 모세가 보고 싶어했던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될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예수님은 찟기시고 맞으셨습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구원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21 God made him who had no sin to be sin[b] for us,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2+corinthians&chapter=5

요한복음 1장 14절에 나와 있듯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신 예수님때문에 고통당하신 하나님을 보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Son,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john&chapter=1

예수님은 이세상이 지어지기 전부터 죽임당하기로 정해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봉사 (sacrificial service)를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예수님,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도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참고: 존 스토트 성공회 사제 추모 홈페이지 http://www.johnstottmemori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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