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순복음강남교회EM에서는 "Surprised By Hope"이라는 제목으로 설교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의신 전도사의 동시 통역으로 영어 실력이 조금 부족하신 분들도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백강수 장로님께서 다시 한번 외국어 예배를 맡으시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영어 예배의 강력한 부흥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영어 예배 시간이 대예배 사이 시간이어서 주차 불편 등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도 기도해야겠습니다.



제목: 소망에 놀라다 (Surprised by Hope)

본문: 에베소서 1:11~23 (Ephesians 1:11~23)

11 In him we were also chosen,[e] having been predestined according to the plan of him who works out everything in conformity with the purpose of his will, 12 in order that we, who were the first to put our hope in Christ, might be for the praise of his glory. 13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message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When you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14 who is a deposit guaranteeing our inheritance until the redemption of those who are God’s possession—to the praise of his glory.

Thanksgiving and Prayer

15 For this reason, ever since I heard about your faith in the Lord Jesus and your love for all God’s people, 16 I have not stopped giving thanks for you, remembering you in my prayers.17 I keep asking that 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glorious Father, may give you the Spirit[f] of wisdom and revelation, so that you may know him better. 18 I pray that the eyes of your heart may be enlightened in order that you may know the hope to which he has called you, the riches of his glorious inheritance in his holy people, 19 and his incomparably great power for us who believe. That power is the same as the mighty strength 20 he exerted when he raised Christ from the dead and seated him at his right hand in the heavenly realms, 21 far above all rule and authority, power and dominion, and every name that is invoked, not only in the present age but also in the one to come. 22 And God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appointed him to be head over everything for the church, 23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everything in every way.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ephesians/1/)

주요 말씀: 

미래에 대한 소망은 우리의 현재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은 항상 주님께 먼저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온통 소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1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소망을 몰랐던 것일까요? 바울은 마음의 눈을 밝혀 달라고 했는데, 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깨닫고 그것으로 삶의 목적을 새롭게 형성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께서 그들의 최종적인 운명 (ultimate destiny)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어의 소망 (hope)과 헬라어의 소망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목사님께서 한국에 오실 때,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게 되기를 소망하셨습니다. 그때, 영어의 소망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영어의 소망은 불확실함 (uncertainty)을 내포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는 완벽한 확실함 (absolute uncertainty)를 내포합니다. 이는 히브리서 11장 1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 "믿음은 바라는 (소망하는) 것들의 실상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확실함)니"라는 말씀에서 헬라어 신약에서 말하는 소망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1Now faith is confidence in what we hope for and assurance about what we do not see.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hebrews/11/)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을 완전히 환경이 똑같은 두개의 방에 나눠 들어가게 하고 똑같이 부품을 조립하는 하도록 했다고 합시다. 한 사람에게는 고된일에 대한 댓가로 연말에 1만달러 (1천1백만원)를 주겠다고 하고 , 방에 있는 사람에게는 1백만달러 (11억원)를 연말에 주겠다고 했다고 칩시다. 첫번째 사람은 아마 이 일이 싫고 곧 그만두겠다고 할 것입니다.. 두번째 사람은 이 일 괜찮은데, 나쁘지 않아. 한 5년동안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두사람은 완전히 똑같은 환경에서 완전히 똑같은 일을 하는데, 그 두사람이 겪은 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면 그들의 소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1만달러 소망을 가졌고, 다른 한사람은 1백만달러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소망에 기반한 창조물 (hope-based creature)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좋은 기독교인의 삶을 살고, 부품 조립하는 일을 충성스럽게 하면 나쁜일은 일어나지 않고 평화롭고 부유하게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바로 이 세상에 소망이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큼 좋은 기독교인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단 한 분만 다른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분은 이 땅에서 배반당하시고, 쫒겨나시고,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아니오, 요한복음 15장 20절은 우리가 예수님보다 뛰어날 수 없으며, 예수님을 싫어하는 자들은 우리도 싫어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0 Remember what I told you: ‘A servant is not greater than his master.’[b] If they persecuted me, they will persecute you also.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john/15/)


잘못된 소망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한때,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시크릿이라는 책은 긍정적인 생각 (positive thinking)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미래를 시각화해야 한다는 철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형님의 여자 친구가 이 책을 읽고, 완벽한 차, 완벽한 남편, 완벽한 일자리 등의 사진을 이른바 "시각화 벽 (visualization wall)"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그 벽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충분히 묵상하면 그것들이 그녀의 삶에 나타나길 바랐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이 그리스도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쉬운 삶을 사셨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즐거운 일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현재의 어려움으로부터 영원하고 놀라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굉장히 놀라고 혼란스러워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리도인의 소망은 궁극적인 미래와 그것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믿음을 잃은 필립 캐리 (Phillip Carey,W. Somerset Maugham의 소설 Of Human Bondage의 등장인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이세상 모든 것이 결국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life has no meaning)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내가 누구를 사랑하던 미워하던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벤치에 앉아 있다가, "그렇다면 나는 이제 완전 자유다 (I'm absolutely free)"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에게 친철하거나, 이웃을 사랑하거나, 정의롭게 행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완벽한 자유라는 것이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다 (unhappy)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삶에 의미가 없고,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결국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은 암 (cancer)처럼 여러분의 모든 삶의 각부분에 퍼져서 영향을 미칩니다. 지치게하고 피곤하게 합니다. 왜냐면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소망에 기반을 둔 생명 (hope-based creature)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떻게 다릅니까? 본문 14절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 (God's possession)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18절의 바울의 기도를 보면, "너희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이며"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오늘날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물은 여러분입니다. 여기서는 성도로서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부부가 1천1백억원 (100 million dollars)짜리 반 고흐의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 부부는 그 그림을 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면, 어떤 것도 그것을 대체할 수 없고, 그 그림을 볼 때, "와우"하며 경탄할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실 때 느끼는 기쁨 (God's delight in you)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우리의 물질적인 육체에 대한 소망도 있습니다. 14절에 우리 기업을 보증하시고 우리를 속량하시는 성령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보증금 (deposit)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이후에 올 무엇인가에 대한 착수금 (down payment)입니다. 이후에 올 것은 바로 우리 육체의 속량 (redemption of our body)인 것입니다. 단지 우리의 몸이 아닌 이세상 모든 자연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하나님의 피조물이 썩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에 이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21 that[h] the creation itself will be liberated from its bondage to decay and brought into the freedom and glory of the children of God.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romans/8/)

필립 캐리는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때, 피조물들은 변화되고 새로운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도 모든 피조물이 목을 빼고 (with neck stretched out) 기다리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시편 96편 12~13절에 보면 나무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주님이 오시면 기뻐할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12 Let the fields be jubilant, and everything in them;
    let all the trees of the forest sing for joy.
13 Let all creation rejoice before the Lord, for he comes,
    he comes to judge the earth.
He will judge the world in righteousness
    and the peoples in his faithfulness.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psalm/96/)

이것은 새하늘과 새땅, 새롭고 환상적인 관점 (a whole new world, a new fantastic point of view)인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되나요? 본문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소망을 주시는 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께 먼저 소망을 두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 (dwelling place), 즉 거룩한 성전인 것입니다. Athanasius 신부는 여러분의 삶의 목적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주님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God became man so that in Christ we might become the glory of God.)라고 말입니다. C. S. Lewis도 그날에 우리를 연약함과 추악함으로부터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실 것이며,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C.S Lewis says, on that day when we see him face to face. He will make the feeblest and filthiest of us into a god or goddess, a dazzling, radiant, immortal creature...) 즉,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함을 닮고, 결국 하나님과 연합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화해 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8 And we all, who with unveiled faces contemplate[a]the Lord’s glory, are being transformed into his image with ever-increasing glory, which comes from the Lord, who is the Spirit.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translation=niv&book=2+corinthians&chapter=3)

이것이 교회가 필요한 진정한 부흥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 보면 우리가 소망이 없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배제되고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2 remember that at that time you were separate from Christ, excluded from citizenship in Israel and foreigners to the covenants of the promise, without hope and without God in the world.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ephesians/2/)

사실 이것이 우리가 태어난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 주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11절에 보면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11 He came to that which was his own, but his own did not receive him.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john/1/)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셨지만,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하나님께 왜 나를 버리셨냐 (forsake)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잠언 13장12절은 소망이 더디 이뤄지면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12 Hope deferred makes the heart sick,
    but a longing fulfilled is a tree of life.

(출처: http://www.biblica.com/en-us/bible/online-bible/niv/proverbs/13/)

주님이 이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주님을 거부했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으며, 주님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고,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모두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삶과 죽음의 소망이 되십니다.


참고: 

시크릿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52206503&orderClick=LAG&Kc=)

Father Athanasius (https://en.wikipedia.org/wiki/Athanasius_of_Alexand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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